[천자 칼럼] 세계 3위 도쿄증시의 굴욕

입력 2020-10-04 18:25   수정 2020-10-05 00:13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앞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만큼 증권거래소 역사도 깊다. 메이지(明治) 유신 직후인 1878년 정부 발행 채권을 거래하기 위해 도쿄에 증권거래소가 처음 문을 열었다. 1773년 런던증권거래소, 1792년 뉴욕증권거래소 출범에 비해서는 한 세기가량 늦었지만, 동아시아에서 근대적 거래소를 가장 먼저 연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의 증권거래소는 도쿄를 비롯해 전국에 11개까지 불어났다가 1949년 도쿄와 오사카로 나뉘어 재개장했다. 이들 거래소는 2013년 1월 설립된 일본거래소그룹(JPX) 자회사로 편입돼 현물거래는 도쿄, 선물 및 파생상품 거래는 오사카가 나눠 맡는 구조로 바뀌었다.

140여 년 역사만큼이나 규모도 세계 적 수준이다. JPX에 상장된 3700여 개 종목의 시가총액은 640조엔(약 7085조원)에 달한다. 미국 뉴욕거래소와 나스닥에 이어 3위다. 세계 15위권인 한국거래소 시총(1912조원)의 4배 가까운 규모다. 증시 ‘거품’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에는 세계 시총 상위 50대 종목 중 3분의 2를 일본 증시 상장사들이 차지했던 적도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아시아 시장을 일본과 ‘일본 제외 아시아(Asia ex Japan)’로 분류하는 데에는 이 같은 위상이 반영돼 있다.

이런 일본 증시가 지난 1일 전산장애로 사실상 ‘올스톱’ 돼 전세계 주요 외신의 톱뉴스가 됐다. 도쿄거래소 1호 서버의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뒤 이를 대체할 2호 서버로 데이터가 넘어가지 않아 매매가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2005년과 2006년에 몇 시간씩 거래가 중단된 적은 있어도, 하루종일 거래가 안 된 것은 처음이다. 역사·규모를 자랑하던 도쿄거래소가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으니, 일본으로선 여간 굴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홍콩 사태 후 ‘아시아 금융허브’를 공공연하게 노려 왔기에 더욱 그렇다. 일본 내부에서조차 “증시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킨 전례 없는 실수”(닛케이)란 비판이 나올 만하다.

긴 추석연휴를 마치고 열리는 한국 증시도 이번 ‘먹통’ 사태를 철저히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2014년부터 가동에 들어간 한국거래소의 전산시스템이 도쿄거래소와 같은 x86서버 기반의 개방형 OS(운영체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산처리 속도 개선이란 과제도 일본과 같다. 남의 일로만 여길 일이 아니다. 세상에 절대 안 일어날 위험은 없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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